카를하인츠 루메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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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를하인츠 루메니게는 은퇴한 독일의 축구 선수이자 축구 행정가이다. 선수 시절 공격수로 활약하며, 바이에른 뮌헨, 인터 밀란, 세르베트 FC에서 뛰었다.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분데스리가 3회, 유러피언컵 2회 우승을 달성했으며, 서독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1980년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 1982년과 1986년 월드컵 준우승을 이끌었다. 개인적으로 발롱도르 2회, 분데스리가 득점왕 3회 등을 수상했다. 은퇴 후에는 바이에른 뮌헨의 최고경영자, 유럽 클럽 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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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클럽 경력
루메니게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립슈타트에서 태어났다. 1974년 바이에른 뮌헨에 합류하여 1984년까지 활약했으며, 이후 인터 밀란과 세르베트 FC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바이에른 뮌헨 시절 인터콘티넨털컵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독일 리그와 컵 대회에서도 각각 2회 우승했다.
1984년, 29세의 나이에 당시 기록적인 이적료인 5700000EUR로 인터 밀란에 이적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1987년 세르베트 FC로 이적하여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으며, 1988-89 시즌 스위스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42]
2. 1. 바이에른 뮌헨
루메니게는 1974년 보루시아 립슈타트에서 바이에른 뮌헨으로 합류했다.[42] 그는 뛰어난 드리블 실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주전 자리를 꿰찼다.[42][43] 1979년 팔 체르나이 감독 부임 이후 득점력이 크게 향상되어, 1979-80 시즌 26골, 1980-81 시즌 29골, 1983-84 시즌 26골로 세 차례나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차지했다.[42]바이에른 뮌헨에서 그는 1974-75 시즌과 1975-76 시즌 유러피언컵 2연패를 달성했다.[42] 1975년 결승전에는 출전하지 않았지만, 1976년 결승전에서는 AS 생테티엔을 꺾는 데 기여했다.[42] 같은 해 인터콘티넨털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42]
파울 브라이트너와의 훌륭한 호흡으로 '브라이트니게'라는 별칭으로 불렸으며,[42] 이 기간 동안 팀은 1979-80 시즌과 1980-81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 1981-82 시즌과 1983-84 시즌 DFB-포칼 우승을 달성했다.[42] 1981-82 시즌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는 애스턴 빌라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루메니게는 6골로 대회 득점왕을 차지했다.[42]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1980년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 1980년과 1981년 유럽 올해의 축구 선수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42]

1983-84 시즌을 끝으로 바이에른 뮌헨을 떠났으며, 분데스리가 통산 310경기 162골, DFB-포칼 42경기 25골을 기록했다.[42][44]
2. 2. 인터 밀란
1984년, 29세의 루메니게는 당시 기록적인 이적료인 5700000EUR에 인터 밀란으로 이적했다.[42] 이 금액은 당시 디에고 마라도나 다음으로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이적료였다.[42] 인터 밀란에서 알토벨리, 리암 브레이디와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42] 1984년 8월 22일 코파 이탈리아 S.P.A.L.전에서 이적 후 첫 골을 기록했다.[42][45] 세리에 A 8라운드 유벤투스와의 이탈리아 더비에서 세리에 A 데뷔골을 포함한 2골을 넣었다.[45][42] 이적 첫 해에는 리그 26경기 8골에 그쳤지만, 코파 이탈리아에서 5골, UEFA 컵에서 5골을 기록했다.[42] UEFA 컵에서는 준결승까지 진출했지만, 레알 마드리드에 패했다.[42] 두 번째 시즌에는 리그 24경기 13골, 연간 총 19골을 기록했지만,[45] 세 번째 시즌에는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고생하며 연간 총 24경기 6골에 그쳤다.[42][45] 인터 밀란으로부터 재계약 제안을 받지 못하고 팀을 떠났다.[42]2. 3. 세르베트 FC
1987년 세르베트 FC로 이적하여 2시즌 활약한 후 1989년 33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다.[43][42] 1988-89 시즌에는 24골을 넣어 스위스 리그 득점왕에 올랐다.3. 국가대표팀 경력
루메니게는 서독 대표팀 소속으로 1980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982년 FIFA 월드컵과 1986년 FIFA 월드컵 준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1978년, 1982년, 1986년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특히 1982년과 1986년에는 각각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하며 FIFA 월드컵에서 두 번의 은메달을 획득한 주장이 되었다.[3]
유럽 선수권 대회에도 두 번 참가했다. 1980년 대회에서 서독은 결승전에서 벨기에를 2-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1976년부터 1986년까지 루메니게는 서독 대표로 총 95경기에 출전하여 45골을 기록했다. 1982년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연장전에서 골을 넣었고, 1986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골을 넣었다. 또한 1982년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칠레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했다.
